장하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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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산성[城山山城] 고구려의 석성(石城)으로 추정

중국 요령성(遼寧省) 장하현(莊河縣) 성산진(城山鎭) 사하촌(沙河村) 만덕둔(萬德屯)에 있는 고구려의 산성.

장하현성에서 서쪽으로 40km 정도 떨어진 해발 290m의 성산에 자리잡고 있다. 성의 서북쪽에는 벽류하(碧流河)의 지류인 협하(夾河)가 흐르고 있다. 산성의 형태는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계곡을 끼고 있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성벽은 산 능선을 따라 잘 다듬은 돌로 쌓았으며, 성벽의 길이는 2,898m에 이른다. 문지(門址)는 모두 4곳이 남아 있는데, 남쪽과 북쪽에 각각 1곳, 그리고 계곡을 막아 높이 축조한 동쪽 성벽의 좌우에 2곳이 설치되어 있으며, 당시의 구조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남아 있다. 또 동문지의 북쪽 100m에는 치성(雉城)이 설치되어 성문을 방어하는 기능을 하였다. 성의 서남쪽 성벽에는 돌을 쌓은 구조물이 있는데, 장수의 깃발을 세우는 깃대봉이라고 전한다.

성의 북서쪽 정상부에는 잘 다듬은 돌을 쌓아 피라미드 형태로 축조한 구조물이 있는데, 하단부는 한 변의 길이가 8.5m, 상단부는 5.4m의 정방형으로 높이는 1.9m 정도이다. 층마다 15cm 내외로 뒤물림하여 올려 쌓았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9층이나 본래는 11층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축조방식은 고구려의 성벽 축조방식인 퇴물림식과 유사하다.

동남쪽면에는 상부 3단에 계단이 만들어져 있는데, 기능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군사지휘소로 보기도 하고, 천신에 제사(祭祀)를 지내던 천단(天壇)으로 보기도 한다. 이 구조물은 고구려의 여타 산성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으로 고구려 산성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성의 동북쪽 끝부분에는 작은 구획을 지어 3중으로 축조된 시설물이 있는데, 맨 끝부분에 자리잡은 장대(將臺)는 후대에 지어진 것이며, 그 남쪽에는 봉화대(烽火臺)로 보이는 구조물이 있다.

성안에는 길이 7m, 너비 5m의 큰 저수지가 있으며. 성안 중앙에는 법화사(法華寺)와 묘(廟)가 있는데, 현재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성의 서북쪽의 협하 건너 입자산(砬子山)에는 길이 5km의 성축산성이 축조되어 성산산성과 서로 호응하고 있다. 아마도 성산산성을 방어하는 보조적인 기능을 하였을 것이다.

이 성산산성은 규모나 시설로 보아 고구려 당시에도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을 것으로 보이며, 대체로 고구려의 석성(石城)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성에 관한 문헌기록으로는 당태종의 대규모 침략이 실패하고 2년 후인 647년(보장왕 6)에 당의 장군 우진달(牛進達) 등이 석성을 쳐서 함락하고 이어 적리성(積利城)을 공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성산산성[城山山城]

중국 요령성(遼寧省) 장하현(莊河縣) 성산진(城山鎭) 사하촌(沙河村) 만덕둔(萬德屯) 성산

고구려가 요동반도에 설치한 지방성의 하나.

성을 처음 축조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대략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한 5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이 성은 요동반도 남단에서 압록강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와 바닷길을 방어하는 요충성으로 축성되었다. 산성의 형태는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계곡을 끼고 있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성벽은 산능선을 따라 잘 다듬은 돌로 쌓았으며, 성벽의 길이는 2,898m에 이른다. 성문터는 모두 4곳이 남아 있으며, 동문지의 북쪽 100m에는 치성이 설치되어 있다. 성의 북서쪽 정상부에는 잘 다듬은 돌을 쌓아 피라미드형태로 축조한 구조물이 있는데, 축조방식은 고구려의 성벽 축조방식인 퇴물림식과 유사하다. 동남쪽 면에는 상부 3단에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이 구조물의 기능은 아직 밝혀져 있지 않은데, 군사 지휘소로 보기도 하고 또는 천신에 제사지내던 천단(天壇)으로 보기도 한다. 성의 동북쪽 끝부분에는 작은 구획을 지어 3중으로 축조된 시설물이 있는데, 가장 끝 부분에 자리잡은 장대(將臺)는 후대에 지어진 것이며, 그 남쪽에는 봉화대로 보이는 구조물이 있다. 산성의 서북쪽에는 벽류하(碧流河)의 지류인 협하(夾河)가 흐르고 있으며, 그 너머 입자산(砬子山)에는 길이 5km의 성축산성이 축조되어 성산산성과 서로 호응하고 있다.

성산산성은 규모나 시설로 보아 고구려 당시에도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대체로 고구려의 석성(石城)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성에 관한 문헌기록으로는 당태종의 대규모 침략이 실패하고 2년 후인 647년에 당의 장군 우진달(牛進達)과 이해안(李海安) 등이 바닷길로 고구려를 침공하여 백여 차례 전투를 치러 석성을 함락시킨 기록이 있다.

성내 중앙에는 법화사(法華寺)와 묘(廟)가 있다.

참고-문화콘텐츠닷컴-

 

[출처] 성산산성[城山山城] 고구려 석성(石城) 동북공정|작성자 석하사진문화연구소